아프고, 슬프고, 분노가 인다. 집단 우울감이 국민을 짓누른다. 국가가 애도 주간을 정해 애도는 하되 진실(?)은 추궁하지 말라고 하는 듯한 그 기간을, 과연 온전한 애도를 하는지도 모를 황망함으로 한 주를 보냈다.

세월호 참사 8년이 지난 올 가을, 다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한복판 이태원, 그것도 통행로 골목길에서 순식간에 별이 된 156명의 청년, 학생들…. 가을이 오면 매년 온 국민의 가슴이 먹먹하고 아릴 것이다.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공동체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제 참담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아프고 안타깝지만 되짚어 본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이 행사가 올해 처음 생긴 것도 아니고, 해밀톤 호텔 옆 좁은 도로가 예전에 없었던 것이 아닌데, 왜 이번에는 똑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대명천지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裏)에 이런 대형 참사가 발생했단 말인가? 경찰 배치만 조금 더 했어도, 군중을 한쪽 방향으로 원활하게 유도만 했어도, 일방통행이나 동선 관리만 잘 했어도, 신고가 들어왔을 때 발 빠르게 대응만 잘 했어도…. 시민 한 사람의 구호로도 현장은 움직였다고 하는데, CCTV를 통해 현장상황을 지켜보면 이런 사태를 예측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은 여러 추측과 아쉬운 지점을 떠오르게끔 한다.

참사 발생 전 압사 예상 신고가 잇따랐음이 확인되면서 국가의 안전망이 작동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픈 실책이다. 경찰이 신고를 받았을 때 서둘러 대응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미리 군중을 통제했더라면 이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안타까운데…. 검찰은 고작 참사 현장에서 "밀어"라고 말한 사람을 색출한다고 하고, 일선 경찰관들의 대응 무능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답답하고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일선 이태원파출소의 직원 90%가 20, 30대 젊은 직원이고 그 중에 30% 이상은 시보도 끝나지 않은 새내기와 기동대에서 현장경험 없이 일선에 나온 직원들로 채워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항상 부족한 인원과 경험으로 인한 고충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 수뇌부는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 10만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 통제를 이태원파출소 중심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왜 그래야 했는지 의아하다. 경찰청과 서울청은 뭘 했는지, 광화문 집회 대응에 그렇게 많은 기동대가 필요했는지…. 살려 달라 손 내밀던 모든 손을 잡아주지 못해, 그 기억들이 채 가시지 않아 괴로워하며 자책하는 현장 경찰관들에게 사고 책임을 추궁하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인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진영논리에 따라 사건의 원인과 성격을 놓고 대결의 수위를 높여가는 동안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의 외신은 사태의 본질을 더 명징하게 지적한다. 이 참사의 본질은 안전과 질서유지에 대한 국가 책임의 방기라고!

정부의 태도와 대응

이번 사건 전후 정부의 대응을 보면 국민적 공분이 일어날 정도로 한심하다. 국가 책무의 상징인 대통령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매일 분향소로 조문을 가는 등 일주일 내내 애도와 조문의 조심스런 행보를 하고 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초기 사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고 하거나 "본건"이라고 지칭하는 등 공감 능력이 없는 수사관의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변명한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구청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했고 주최 측이 없으니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드러내놓고 하는 구청장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국격을 대표하는 국무총리가 외신 기자 회견에서 맥락 없는 농담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정권이 과연 희생자 애도를 하기는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행사 주최가 없으니 (정부의) 책임도 없다는 식의 발언이 이번 참사를 보는 정권의 기본 시각이라면,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헌법정신에 정면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재난사건을 주로 담당했던 김영희 변호사는 '주최가 없어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는 법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존재 의의는 국민의 안전보장에 있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 보장에 관해 정치적 수사를 넘어 헌법적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이번 참사에 정부, 경찰, 서울시, 용산구 그 어디도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참담한 사건의 애도 기간에 되짚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암담하다.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 도로교통법 6조, 재난안전법 4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가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공직자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현 정부의 이러한 범정부적 안전 불감증 내지는 책무의 회피가 국민안전에 대한 정부와 국가 지도자의 인식과 일말의 연결고리가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23일 원전업계 간담회에서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원전 안전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논란을 야기한 바가 있다. "자유"에 우선가치를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정체성이 자칫 안전과 환경 등 "선한 규제"가 필요한 영역에서 방임과 혼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앞으로 정부는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보다 정교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시종일관 책임을 축소하거나 전가하는데 급급한 행정안전부 장관의 태도를 보면, 이 정부가 애도 기간 이후 진상조사를 통해 사태를 수습하고 국민들이 공감할만한 수준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앙부처가 주연이라면,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회피와 책임전가의 조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최근 안전예산을 감축하고 안전 관련 인력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과 개선이 없이 합동분향소에서 눈물을 보이는 정치적 행보를 할 때가 아니다.

진심어린 애도

정부는 참사가 나자마자 "국가 애도 기간"을 정했다. 대통령도 매일 희생자를 조문하면서 국민적 슬픔에 공감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때는 진상 규명 논란으로 인해 애도기간마저 정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세월호 이후 정권은 안전에 관한 한 국민들의 눈높이와 허용수준이 높아졌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것처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의 거듭된 실수(?)는 국가 애도 기간의 설정이 "관제" 애도 유도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국가가 알아서 애도의 성격과 범위를 정해줄 테니 그대로 따르면 된다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애도 기간을 설정하기에 앞서 정부가 희생자를 애도하고 참사 책임에 관해 사과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공식적 사과와 직접적 애도 표현 없이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했다. 그에 따라 이러한 오해가 증폭된 측면이 있다.

다행히 시민사회 각계각층의 조문과 공감, 애도의 물결이 정부의 다소 경직된 애도가 놓친 공백을 채워주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화한 국화가 지하철역을 뒤덮어 유가족의 찢어지는 가슴을 조금이나마 위무했다. 이는 이번 참사의 진상을 알고 싶다는 시민의 뜻으로 해석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진정한 애도는 희생(죽음)의 진상을 알고 진실에 접근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과관계가 투명하게 입증되지 않은 채 사랑하는 가족을, 친구와 이웃을 떠나보내야 한다면 남은 이들의 분노가 일고 한이 남는 법이다.

아울러 죽음은 그 누구도 도구화하거나 정쟁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당파적 이익을 위해서 죽음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상상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벌써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참상을 둘러싸고 갖가지 파당적 공격과 음해가 난무한다. 심지어 특정 지역의 음모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애도의 쓰리고 참담한 집단정서를 오독하여 분열과 파괴로 이끄는 패륜은 우리 사회가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은 우리 사회에서 엄중하고 무서운 명제가 되었다.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은 엄혹한 식민지 시대에 '고통'만이 진실이었다고 말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세월호 선실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선원들의 말을 믿고 있다가 물에 갇힌 아이들이나 이태원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호흡을 멈추어야 했던 청년들이 겪었던 '고통'만이 실체적 진실이었을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안전에 대한 논의가 엄중하고 무겁게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 이태원 희생자들이 살았더라면 누렸을 대한민국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한다. 유시민은 그의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훌륭한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훌륭한 국가는 '실업과 빈곤, 질병, 고령, 재해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서도 시민을 적극 보호한다. 시민들이 스스로 연대하여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안보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토대로 삼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복지국가는 없다. 이 네 가지 모두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 모든 것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정치적 절차와 제도를 가지고 있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그러한 '훌륭한 국가'를 향해 한두 걸음을 나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올해 초,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책 제목처럼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2021년 7월 2일 경제와 무역의 유엔(UN)인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공식 변경했다. 하와이대 명예교수인 세계적인 미래학자 짐 데이토가 서구의 모델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다며, 대한민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표준을 제시하고 미래의 길을 찾아 세계에 보여 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작년에 세계 젊은이들이 코로나19가 끝나면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나라중 하나가 K-Pop의 나라 한국이라는 통계조사까지 최근에 발표되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국을 우러러보고 박수를 보내던 외국 정상들의 찬사가 조사로 바뀌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외국인 사망자가 26명, 부상자가 15명이나 된다. 최근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불안한 국가로 추락하고 있고 국민의 피로감은 하루하루 쌓여간다. '날리면'으로 대표되는 대통령의 외교 시행착오, 강대강으로 치닫는 남북관계와 위협받는 한반도 평화, 강원도발 채권시장의 위기로 시작된 경제 신뢰도 추락…. 이 모든 것이 단지 우연이고, 국격 추락과는 과연 아무 관계가 없는 걸까? 뭐든지 쌓아 올리기는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무너지고 추락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때로는 순식간에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희망을 보고 싶다. 애도의 현장에 모여 이번 참사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희생자·유가족과 함께 아파하며 공감하며 연대하는 청년들, 이들이 있어 슬픔을 이기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치유를 넘어 안전하고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일을 완수하는 주체는 주권자인 시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