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노동자 목 조른 마지막 진압장비, ‘쌍용차 국가손배’가 꺾였다 - 경향신문

거액 손배, 국가폭력 트라우마와 싸워

13년간 30여명은 스스로 목숨 끊어

2019년 7월 노동자 48명 복직했지만

일부는 첫 급여 상당 금액 가압류도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파손된 경찰 장비 등을 배상하라며 국가가 노동자에게 제기한 ‘쌍용차 국가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국가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간부와 민주노총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첫 소송 제기 후 13년 만에 나온 결정이다. 그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거액의 손배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를 견디며 싸워야 했다.

‘쌍용차 국가손배 소송’은 2009년 ‘쌍용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차는 경영난을 이유로 총 인원의 36%인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된 노동자들은 77일간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을 벌였다. 정부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방패와 곤봉, 저공 헬기, 물대포로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쫓아낸 경찰은 그해 9월 파업 참여 노동자 중 67명을 특정해 2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시위 과정에서 장비 등이 파손됐다는 이유였다. 4년이 흘러 2013년 11월 1심에서 법원은 노동자들이 13억7670만원을 국가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가와 별도로 쌍용자동차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 전까지 계속 굴러갔다.

노동자들의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도 3년이 걸렸다. 2016년 5월 항소심에서 법원은 1심과 같이 노동자들이 국가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손해배상액만 11억3072만원으로 2억원가량 줄었을 뿐이었다. 노동자들의 상고로 진행된 대법원 3심도 6년 동안 계류됐다. 재판이 지연되며 이자가 붙어 손배 청구액은 29억 2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 사이 3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리해고로 인한 생활고, 끝나지 않는 손해배상, 폭력진압 트라우마와 우울증 등 복합적인 원인이었다. 부부가 둘 다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었다. 2015년 김승섭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쌍용차 해고자·복직자·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비교한 연구를 보면, 쌍용차 해고자 75.2%가 ‘지난 1년간 우울 및 불안장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노동자들은 법원 밖에서 계속 싸웠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은 2015년 해고자 복직과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쌍용차 공장 굴뚝에서 88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거액의 손배로 인한 생활고를 돕자며 시민들이 ‘노란봉투’에 제각기 돈을 담아 보내기도 했다. 이는 파업을 이유로 한 손배소를 금지하자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의 바탕이 됐다.

쌍용차 국가손배소가 불합리하다는 사회적 판단은 법정 밖에서 차곡차곡 쌓여 갔다.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의 쌍용차 옥쇄파업 진압이 폭력·과잉진압이었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국가가 갈등조정을 게을리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손배 소송이 계속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이 후퇴할 우려가 있다”고 대법원에 의견을 냈다. 2019년에는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이 과잉 진압을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이 미뤄지면서 ‘손배의 굴레’는 계속 노동자들을 짓눌렀다. 2019년 7월, 노사 합의로 정리해고 10년 만에 쌍용차 노동자 48명이 복직했지만 이 중 일부는 첫 급여의 상당 금액을 가압류당해야 했다. 절반 가량을 가압류당한 노동자도 있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대법원 결정을 두고 “법원의 판단은 한 사건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사회 통념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며 “오늘의 판결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파업을 손배가압류로 보복하는 행위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